나를 지탱해 주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정말 많다, 2025년 12월 28일 일기


올해를 마무리하기에 오늘이 가장 완전해 보였다. 달력에 오늘을 혼자 완전히 보내는 날로 정했다. 제일 좋아하는 카페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어나서 간단히 영상들을 편집했다. 오늘을 영상 마무리에 넣고 싶어서 완성하지 않고 영상을 잠시 덮어뒀다. 그리고 이불을 정리하고 옷을 챙겨 입고 카페로 나왔다. 어제 밖으로 나왔을 땐 온 도로며 길이 꽁꽁 얼어서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는데 오늘은 그래도 10시가 조금 넘어서 그런지 걸을만했다. 카페로 왔다. 매번 먹는 라테를 주문했다. 항상 반갑게 맞이해주시던 분은 안 계셨지만, 매번 일하던 두 분이 일하던 중이었다. 두 가족과 한 할아버지.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작은 빨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올해도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구나. 올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신났다고 답하고 싶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게 조금은 두렵기도 하지만, 그 새로운 것들이 결국 나의 익숙한 것이 되었을 때 주는 편안함.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신난다. 난 그 과정을 즐기는 사람 같다. 나를 둘러싼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줄 아는 마음과 그대로 듣는 귀. 그대로 보는 눈. 그게 필요했는데. 익숙해지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지치고 여유가 없으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힘이 없어진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도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을 잃었던 내가 꽤 별로였다. 아직 삶을 살아가는데 프로 이지 않아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잠시 멈추기. 잠시 멈추고 내가 언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봤을까. 생각해 봤다. 프랑스에 있을 때. 그리고 돌아오고 나서 일 년 정도. 내가 그때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볼 마음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슬픈 날도 있었고, 기쁜 날도 있었고, 행복해 미치는 날도 있었고, 화가 나서 발을 구르던 날도 있었겠지. 그래도. 그나마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눈. 있는 그대로 듣는 귀. 있는 그대로 느끼는 마음. 그리고 그걸 말하는 입이 있어서. 행복했는데. 지금도 다시 더 행복해졌다. 행복한데 슬프기도 해. 행복해서 슬픈 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은 백 번이고 더 줄 수 있는데 살아 나가기에 바빠 마음 밖에 줄 수 있는 게 없는 게 속상하다. 그래서 요즘은 어떤 삶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다. 이루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생기는 것 같아. 어렸을 땐, 혼자라서 완전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느꼈다. 혼자여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저곳 거리낄 것 없이 돌아다니고. 지금 당장 나의 우선순위, 내 마음이 이끄는 결정을 하고. 달리고 싶으면 나가서 달리고. 낮잠 자고 싶으면 낮잠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울고 싶을 때 울고. 춤추고 싶을 때 춤추고. 근데 올해 크게 느낀 건. 역시 사람은 함께 해야 하는 동물인가. 사람인 자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뒷받침해주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도. 사회라는 단어가 모일 사, 모일 회가 합쳐진 단어라는 것이. 함께 나눌 때 오는 행복들을 내가 너무 얕봤던 것 같다. 항상 정작 행복할 땐 함께었어서 그런가 봐. 20대 초반에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오면, 그걸 나눠줄 사람들이 필요했는데. 지금이 되니까 기쁨이라는 감정이 왔을 때. 그걸 나눠 줄 사람들이 귀하다. 기쁨이라는 나의 감정을 진심으로 나눠 줄 친구나 가족이 있다면 크게 성공한 삶이라고도 생각해. 그걸 이제서야라도 알아서 참 다행이다. 그걸 느낀 이후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쁨을 함께 나누어 축하해 주는 것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행복하다. 얘들아. 엄마, 아빠, 태하야. 할머니들. 나에게 당신의 기쁨을 마음껏 나눠주세요.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나눠진다지만 기쁨은 나누면 백 배 천 배 만 배가 된다. 기쁨을 제대로 나눌 줄 아는 법을 배우자. 2026년엔 더 많은 사람들의 기쁨을 백 배 천 배 만 배로 함께 느껴야겠다.


내가 잘하는 건 뭘까. 얼마 전에 생각해 봤다. 내가 잘하는 건. 사랑하는 거랑 우는 거. 내가 잘하는 것들에 대한 짧은 그림책을 만들어 보자. 뭘 사랑하고 뭐 때문에 울고. 올해 새로 만난 친구들을 한 번 나열해 볼까? ... (중략) ... 많다 많아.


사랑하는 나의 가족. 김영필 천명자 김태하 구막달 김영남. 나의 친구들. ... (중략) ... 등등 고맙습니다. 거의 뭐 수상소감. 나를 지탱해 주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정말 많다. 항상 고맙습니다.


2026년 하고 싶은 것

●등산 가서 야생 소 보기

●여름에 해변에서 익기

●백패킹

●엄빠와 유럽여행

●장모소 만나서 셀피찍기

●라마 실제로 볼 수 있나?

●인터뷰 10명은 해보기

●그림책

●오로라 보고 싶다

●풀 마라톤 완주 - 베를린, 9월

●취업, 어떻게든 되겠지

●독일어 배우기

●책 12권 + a


2025.12.28.일요일. 주현이가, 베를린에서


짝사랑도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이런 상상 한 번씩 하지 않나? 누군가 나에게 "넌 첫사랑이 누구야?"라고 묻는 상상. 그러면 어떤 대답을 해야 완벽한 답변이 될까 중학생 때부터 고민했던 것 같다. 짝사랑도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왜인지 나의 사랑을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것들은 죄다 내가 혼자 깊이 사랑한 것들뿐인 것만 같다.


중고등학생 때에는 무조건 누가 나보고 첫사랑을 물어보면 이 사람이라고 대답해야지 했던 사람이 있었다. 중학생 때, 근처 외국어 고등학교에 영재원에 다녔었는데 그 당시 여름 캠프에서 만난 선배. 그 선배를 만나고 나의 이상형이 이런 사람이구나 새삼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아마 그 선배는 나의 존재를 몰랐을 텐데 여름캠프에서 모의 토론 시연을 보고서 혼자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거다. 이후로 내 눈은 계속 그 선배만 좇았던 것 같다. 적당히 위트 있고, 적당히 리더십 있고, 분위기를 형성하고, 웃음이 예쁜 사람이었다. 영어를 잘 하는 건 덤. 매일 영재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 선배를 관찰한 일지 같은 걸 메모장에다 적었던 기억이 난다.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좋아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기억하고 싶어지니까. 그 사람이 나의 첫사랑이라고 생각했다.


20살이 되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첫눈에 쟨 뭐지? 눈에 들어온 친구가 있다. 아마도 나의 첫사랑은 이 친구인 것 같기도 한데... 예전에 누가 나보고 첫눈에 반하는 타입인지, 아니면 서서히 스며드는 타입인지 물어봤을 땐 무조건 후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나는 좀 첫눈에 반하는 타입 같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첫눈에 반해서 서서히 스며든다. 처음 봤던 날, 카키색 항공 점퍼가 잘 어울렸던 아이. 아마 너도 내가 널 좋아했었다는 걸 알긴 했을 텐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을 거야. 어제 크리스마스라서 친구들끼리 몇 명 모여서 저녁을 같이 해 먹었다. 그때 한 친구가 각자의 플러팅 방법이 있는지 물었는데, 난 항상 간식거리를 준비해서 짠 하고 주는 게 나의 플러팅 방법이라고 말했다. 카키색 항공 점퍼가 잘 어울렸던 그 아이. 그 친구는 학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을 했다. 나는 학교 바로 아래에 살았었는데, 첫 수업을 갈 때마다 그 친구가 일하는 건물에 들러서 매일같이 사과 즙을 갖다 줬다. 엄마가 나 먹으라고 집에서 보내준 사과 즙을 거의 그 친구에게 다 갖다 준 것 같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항상 이렇게 보냈던 것 같아. '잠시만 문 앞으로 나와봐.' 그러고 나오면, 사과 즙을 쥐여 주고는 쌩하고 수업을 들으러 갔다. 여자 중학교, 여자 고등학교를 나온 나에게 설렘이 뭔지 그 친구가 나에게 알려줬다. 항상 그렇게 다정했고, 항상 그렇게 맴돌았다. 우리는 친구였는데, 친구여서 그리고 내가 너무 미숙해서 만나지 못했다. 그 친구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침대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친구가 나의 첫사랑일까?


고백했다가 까인 오빠도 있다. 까이고 싶어서 고백을 했었다. 차라리 이렇게 혼자 상대의 마음을 이래서 저랬을까, 저래서 이랬을까 고민하느니 "난 네가 싫어." 이 말 한마디면 내 마음이 정리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고백했다. 우리는 걸어서 3분 거리에 살았다. 그래서인지 부쩍 많이 만나서 놀았던 때가 있다. 서로 좋아하던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매일 밤 통화하며 서로의 아픔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오빠에게 스며든 것 같다. 왜 나만? 어이없네. 매번 만나서 캔맥주를 마시던 우리 집 아래 골목길 계단에서 고백했다. 좋아한다고. 그땐 초여름이었고, 셔츠 한 장 입기 좋은 날씨였다. 나는 고백했고, 나는 까였는데, 너는 울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봐도 왜 네가 울었는지는 이해는 안 되는데, 내가 너무 어렸던 건 맞는 거 같아. 이 오빠가 나의 첫사랑일까? 아니. 아닌 것 같다.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SNS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같은 학교, 다른 과. 내 친구의 동기. 나는 이전 오빠에게 까이고, 친구에게 남자를 좀 소개해 달라고 했다. 친구 지갑에서 동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내 스타일인 친구 한 명을 꼽았다. "나 얘 소개해 줘." 교환학생을 가기 직전에, 그 친구를 실제로 보지도 못했는데 무작정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고 메시지를 몇 마디 나눴다. 시원찮은 답변들에 연락을 끊었었는데, 내가 프랑스에 있을 때 다시 연락이 닿아 그 친구와 내내 연락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그 당시에 군대에 있었는데, 본인이 무엇을 했는지 말해주고, 나는 무엇을 했는지 물어봐 주고, 휴대전화를 내면서 휴대전화를 낸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나는 나의 하루는 어땠는지, 프랑스의 사진들을 공유해 주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에 들면 다시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그렇게 반년은 연락을 했던 것 같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친구에게 스며들었다. 친구의 친구였어서 더 빨리 스며들 수 있었던 것 같아. 그 친구가 좋아하는 음악, 그 친구가 좋아하는 공간들이 나와 비슷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아니면 네가 날 좋아하지 않았겠다. 넌 나의 첫사랑이 아니다.


나의 전 남자친구. 넌 나의 첫사랑이 절대 아니다. 사랑할 겨를도 없이 헤어졌다.


베를린에서 만난 양자리 남자애. 누가 보더라도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이름 붙일 너. 나는 네가 첫눈에 들어왔다. 이름마저 내 스타일. 친구들이 나보고 괴짜라고 여기는 것들 중 하나는, 나는 이름도 본다. 이름을 주로 보는 건 아닌데, 이름'도' 본다는 거다. 이름에 강한 소리가 나는 자음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ㅋ, ㅌ, ㅍ 이런 거... 아니면 각진 ㄱ, ㅈ, ㄷ 이런 거... 이게 중요한 건 아닌데, 이름도 마음에 드는지 곁들여 본다는 그런 거다. 195cm의 키에 말랐다. 매일 다른 색의 양말을 신고 온다. 눈이 땡그래서 매번 눈을 맞추면 ㅇ0ㅇ 이런 표정을 짓는다. 그런 네가 너무 귀여운 거다. 말을 내뱉 듯이 한다. 삼키 듯이 하는 게 아니고. 그리고 항상 보면 그렇게 긍정적이다. 난 너의 그 모습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냥 그 친구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나를 끌어당겼다. 네가 나의 첫사랑일까?


짝사랑도 첫사랑이 될 수 있을까? 마지막 사랑이 첫사랑인 것만 같은. 누가 나보고 첫사랑이 누구냐 오늘 묻는다면, 난 누구라고 대답해야 할까.


2025.12.26.금요일. 주현이가, 베를린에서